☆… 장마 속 운무(雲霧)를 헤치고 운길산(雲吉山)-예봉산에 … (2011.07.17)
☆… 남해지방을 오락가락하던 장마전선이 어제 저녁부터 다시 한반도로 북상하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엄청난 비가 내렸다. 서울 중부지방에서도 밤새 많은 비가 내려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발생하고 크고 작은 교통사고 소식도 있었다 ‘우천불구(雨天不拘)….’ 그렇다. 어떤 악천후에도 계획된 산행은 반드시 실시해온 것이 우리의 뼈대 있는 전통이다. 비가 개인 아침,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우장(雨裝)을 단단히 챙기고 출행했다. 김진우, 그냥 산이 좋아 산을 찾아가는 산사나이의 정신이다. 오늘 산행지는 유서 깊은 수종사(水鐘寺)를 품 안에 안고 있는 운길산(雲吉山)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장대한 가람이 합수하는 두물머리[兩水里]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수종사를 경유하여 산의 정상에 오르고, 그리고 한북정맥의 산릉을 따라 예봉산을 오르는 일정이다. 백두대간 한북정맥이 남쪽으로 내리뻗다가 거대한 한강의 물줄기 앞에서 질주를 멈추고 마지막으로 불끈 솟아오른 봉우리가 운길산이 아닌가. 그 정기가 용출한 산기슭에 예의 수종사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 작년에 새로 개통된 용산역(龍山驛)에서 경기도 용문(龍門)까지 이어지는 중앙선 전철을 타고 운길산역에 당도하기까지도 비는 오락가락. 심지어 구리-덕소 구간을 지날 때는 창밖에서 장대비가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가 역에 도착하자마자 이상하게도 그렇게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오늘 우리들의 산행을 위한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나 할까. 짙은 비구름이 밀려나가고 있었다. 역에 내려 운길산을 바라보니 짙푸른 청산에는 뽀얀 연무가 산록을 휘감아 넘고 있어 신비한 기운이 감돈다.
☆… 비는 그쳤다. 수종사 일주문까지의 콘크리트 도로를 피해 계곡 길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내린 비로 계곡에는 물이 콸콸콸 넘쳐흘렀다. 물기를 머금은 초목들은 싱그럽게 번들거리고 장마 특유의 무더위가 엄습해 왔다. 고도를 높여 오를수록 몸은 뜨거워지고 땀이 온몸을 흠뻑 적신다. 천지에 가득한 습기로 인해 자연은 습식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무자비하게 땀이 흐른다. 땀은 그 동안 몸에 쌓인 노폐물을 쏟아내고 생활의 피로감을 씻어낸다. 일주문에 도착하여 기념촬영을 하고 수종사의 계단을 오른다
☆… 운길산 수종사는 1458년(세조 4년) 세조(世祖)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다녀오다가, 두물머리[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어 깊은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가 들려 잠을 깬 왕이 부근을 조사하게 하자, 뜻밖에도 바위굴이 있고, 그 굴속에는 18나한(羅漢)이 있었는데, 굴속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나왔으므로,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하였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운길산의 높은 산록에 위치한 수종사는 주위의 첩첩산군들과 어울린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대(眺望臺)로 이름이 나있는 고찰이다. 조선시대 전기의 대문장가 서거정(徐居正)이 이곳을 찾아와 산세를 둘러보고 ‘천하의 명당’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백두대간의 금강산과 설악산에서 발원하는 북한강과 백두대간의 오대산과 대덕산에서 발원하는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인 이곳 두물머리에서 두 강물이 합류하여 비로소 대가람이 이루어진다. 한가람[漢江]은 한남정맥의 금단산과 한북정맥의 운길산 사이를 지나 한양을 안고 돌면서 북쪽을 방향을 틀어 가다가 임진강과 합류하여 강화도의 북단 서해로 빠져나간다.
☆… 지금도 수종사 조망대에서 바라보면 동·남향으로 광대하게 펼쳐진 팔당호수와 그 호반을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산들이 어우러져 아주 멋진 장관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그 열린 시공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탁 트이고 자연의 공활한 정기가 밀려들어와 심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거리낌 없는 호연지기 또한 은근히 솟아나는 기분이다. 더구나 사찰의 절벽 난간에 세워져 있는 ‘三鼎軒’삼정헌은 수종사의 유서 깊은 전통찻집이다. 선불당의 맞은 편에 있다. 그 남쪽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방의 문을 열면, 앉은 자리에서도 자연의 풍광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맑은 차 한 잔에 가슴을 적시고 자연의 맑은 기운을 음미할 수 있는 곳이다. 삼정헌 벽에는 이곳에서 천하를 조망한 몇 편의 시(詩)가 걸려 있다. 그 중의 <上水鐘寺>(수종사에 올라서) 한 수를 옮겨 놓는다.
疊疊靑山萬古靑 첩첩청산은 만고에 푸르고
滔滔綠水流千歲 도도히 흐르는 녹수는 천세를 가네.
人生迷惑未及百 미혹한 인생은 백 년도 못 가지만
水寺鐘聲至永世 수종사 종소리는 영세(永世)를 울리네. ―<鐘聲> (필자 졸역)
負戴愁心幾千斤 짊어진 수심(愁心)이 몇 천 근인가.
掛雲狹寺不能載 구름에 걸린 작은 산사는 그걸 지지 못 하니
煩春放下漢江水 번화(繁華)한 봄기운이 한강수로 내려가고
心乘片雲彼岸在 마음은 구름을 타고 피안(彼岸)에 이르네. ―<放下春> (필자 졸역유
시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고 낙관(落款)을 눌렀다. '乙酉秋日作詩 爲一海東仁主持 乙丑春日座三鼎軒呈書 前忠北副知事 無有盧和旭'(을유년 가을 일해동인(一海東仁) 주지스님을 위하여 시를 짓고 을축년 봄 삼정헌(三鼎軒)에서 글씨를 써서 드립니다. 전 충북 부지사 무유(無有) 노화욱(盧和旭) )
☆… 기라성 같은 조선의 문인들의 족적(足跡)이 이곳에 있다. 조선 전기의 서거정(徐居正)을 비롯하여 임란 후의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심지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까지 이곳을 찾아 차를 마시며 풍광을 즐기며 시를 남기고 갔다. 전통의 차 향기가 은은하게 풍기는 산사에서 잠시나마 세상의 번거로움을 내려놓고 마주한 스님과 더불어 성속(聖俗)을 넘나들며 담소하던 정경이 떠오른다.
▶… 서거정(徐居正)이 누구인가. 서거정(1420~1488년)은 본관 대구(大丘)로, 아버지는 목사를 지낸 서미성(徐彌性)이며, 어머니는 태종 때의 문신 권근(權近)의 딸이다. 세종 때 집현전 학사로 훈민정음 창제의 일익을 담당한 최항(崔恒)이 그의 자형(姉兄)이다. 서거정은 6살 때부터 글을 줄줄이 읽어내고 절묘하게 시(詩)를 지어 신동(神童)이라 불리었다. …
19세(1438년)에 진사과와 생원과에 잇달아 급제하였고, 25세(1444년)에 대과에 급제하여, 집현전박사라는 관직으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세종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69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6조의 판서를 두루 거치고 한성부 판윤, 대사헌,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고, 23년 간 문형(文衡)을 담당한 대문호이자 전형적인 대각문인으로 매월당 김시습과 함께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추앙받는다.
서거정의 아호가 사가정(四佳亭)이다.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의 이름은 바로 서거정의 아호에서 취한 것이다. 그가 말년에 용마산 아래에서 여생을 보냈으므로 그 연고가 있다. 지금도 면목동 용마산공원 안에 그의 시비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서거정의 시 <閑中>이다.
白髮紅塵閱世間 홍진에 묻혀 백발이 되도록 세상을 살아 왔는데
世間何樂得如閑 세상살이 가운데 어떤 즐거움이 한가로움 같으리.
閑吟閑酌仍閒步 한가로이 읊조리고 술 마시며 또 한가로이 거닐고
閑坐閑眠閑愛山 한가로이 앉고 한가로이 잠들며 한가로이 산을 사랑한다네. <閑中>
▶… 특히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그 생가 고택이 두물머리 호반(湖畔), 이곳 수종사에서 가까운 조안면 능내리 마재[馬峴]이므로 자주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장장 17년 동안 전라도 강진 땅에서 유배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다산은, 수시로 이 수종사에 올라 천하 자연을 조망하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심신을 달래었다고 한다.
▶… 그리고 조선 임진왜란 때의 문신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1561~1613년)은 그 본관이 이곳 광주(廣州)로서 산수가 빼어난 운길산(雲吉山)을 사랑하여 바쁜 정치생활 중에도 여가를 내어 사제촌(莎堤村, 조안면 송촌리, 수종사 아랫마을)에서 수종사(水鐘寺)로 이어지는 돌길을 자주 걸었다. 수종사의 주지가 되어 사제촌의 한음을 인사차 찾아온 덕인스님에게 시를 한 수 지어주었는데 사제촌을 둘러싼 겨울풍경이 그윽하다.
僧從西崦扣柴關 운길산[西崦] 스님이 사립문을 두드리네.
凍合前溪雪滿山 앞개울은 얼어붙고 온 산은 백설인데
萬疊靑螺雙練帶 만첩청산에 쌍련대(雙練帶) 매었네.
不妨分占暮年閑 늘그막의 한가로움 누려봄직 하련만
한음(漢陰)은 7년여의 임진왜란을 수습하는데 큰 공훈을 세웠으나, 극심한 정쟁으로 인해 국정이 혼미해지자 몹시 상심하였다. 봄날이 가는 어느 초여름, 한음은 이곳 수종사를 찾아 주지스님에게 우국충정에서 우러난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드러내는 시를 지어 주었다.
風輕雲淡雨晴時 산들바람 일고 옅은 구름비는 개었건만
起向柴門步更遲 사립문 향하는 걸음걸이 다시금 더디네.
九十日春愁裏過 구십일[석 달] 봄날을 시름 속에 보내며
又孤西崦賞花期 운길산[西崦] 꽃구경은 시기를 또 놓쳐버렸네.
사제촌(莎堤村, 松村里)는 일명 ‘한음(漢陰) 마을’이라 일컫는데, 조선 500년 역사상 최연소로 31세에 대제학에 오르고, 42세에 영의정에 오른 한음 이덕형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후, 삶을 마감한 별서(別墅)터 및 하마석(下馬石) 등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 수종사 경내의 동쪽에 위치한 ‘해탈문(解脫門)’ 밖에 수령 500년이 넘는 은행(銀杏)나무 두 그루가 있다. 수종사의 살아있는 역사를 증언한다. 이 은행나무는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 다음으로 오랜 연륜을 지니고 있다. 아직도 하늘을 우러러 전후좌우로 수천 수백 가지를 성성하게 드리우고 있다. 그 나무 아래 장대한 오석(烏石)에 <수종사 사적기>를 새겨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 수종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상서로운 기운을 좇아 이곳에 이르러 구리종을 얻음으로써 부처님의 혜광을 통해 고려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하다. 1439년(세종 21년)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이 정의공주의 부도를 세우고 금제 9층탑 사리함(사리 14과)을 청자항아리에 담아 부도 안에 모셨다. 1458년(세조 4년)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머물다 새벽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올라와 보니 그 종소리는 다름 아닌 바위 굴 속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세조는 굴속에서 18나한을 발견하고 5층 돌계단을 쌓았으며 팔도 방백에게 중창을 명하였다. 도량은 이러한 연유에서 수종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때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고 다음해인 1459년에 수종사탑을 건립하였다.
1493년 (성종 24년) 후궁 영빈 김씨가 목제불감과 설법도가 그려진 금동불감에 금동불보살상 등 14좌를 봉안하고 후궁들의 발원문도 함께 넣어 탑 안에 모셨다. 1628년(인조 6년) 정의 대왕대비가 금동비로자나불 좌상을 시주하였으며, 1890년 주지 풍계혜일은 고종황제로부터 두 차례의 시주를 받아 수종사를 중창하였다. 이때 불상에 빛이 발하였다. 1939년 일조 태욱화상이 중수하였으나 6·25전쟁 때 불에 탔다. 1974년 혜광화상이 대웅보전을, 1981년 규원당 대웅화상이 약사전과 종각을 지었다. 1999년부터 금해당 동산(스님)은 응진전(應眞殿), 선불장(宣佛場), 삼정헌(三鼎軒), 경학원(經學院), 미륵불(彌勒佛), 일주문(一柱門) 등을 세워 사격을 완성하여 당대 최고의 문장가 서거정(徐居正)이 천하 명당이라고 찬탄했던 절의 중창을 다시 복원하였다. 수종사는 조선 후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를 비롯하여 다선묵객들이 당색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함께 모여 담론을 했던 사회 변혁의 꿈이 깃든 곳이다. 후인을 위해 수종사와 함께했던 선인의 발자취를 따라 사적기를 적는다.
불기 2551년 동산 짓고 선주석 쓰다.
☆… 수종사 탐방을 마치고 본격적인 산행에 돌입했다. 가파른 돌계단 길을 치고 올라 운길산 정상을 향하여 오르는 것이다. 울창한 수림 사이로 엷은 안개가 스며들고 뽀얀 연무가 자욱하게 흐른다. 비는 그쳤지만 숲에는 가끔 물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울창한 숲길을 걷는다. 숨이 가쁘게 차 올라오지만 공기는 서늘하고 바람결이 한결 부드럽다. 일단 능선에 올라 정상으로 가는 길은 가벼운 바위능선이다. 오늘 따라 산에는 다른 등산객들은 거의 없어 아주 쾌적하고 조용한 분위기이다. 장마철의 불순한 날씨 때문일 것이다.
☆…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해발 610m의 산정에는 둥그스름한 자연석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운길산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한 나무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운길산(雲吉山 610m) / 구름이 가다가 이 산에 걸리어 멈춘다고 하여 ‘운길산’이라고 한다. 강원도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화천, 춘천을 거쳐 약 371m를 흘러내려온 북한강물과, 태백시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영월, 충주를 거쳐 여주, 양평으로 흘러온 남한강물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수(山水)가 수려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구름이 걸리어 멈춘다는 운길산(雲吉山)’… 오늘은 명실공히 산의 이름에 걸맞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밤새부터 세차게 퍼붓던 비가 그치고 난 후, 산정을 중심으로 하얀 구름이 둘러싸고 있어 원근(遠近)의 산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산의 정상에서 천지 사방의 풍광을 조망하지 못해 아쉽기는 했지만, 산 주위의 운무로 인하여 산 위에 서 있는 우리들은 꼭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아주 환상적이고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야말로 ‘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하는 기분이다. 겨드랑에 날개가 돋아나와 신선(神仙)이 되어 날아오르는 느낌 말이다. 송나라의 소동파(蘇東坡)가 적벽강(赤壁江)에 배를 띄우고 진객(珍客)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노닐 적에 그 호젓하고 날아갈 듯한 기분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땀 흘리고 난 후, 정상에서 마시는 한 잔의 막걸리는 피로와 열기를 씻어내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정상주(頂上酒)를 한 잔씩 나누고 내가 준비한 카레 덧밥을 나누어 먹었다. 특히 구미호의 정성이 깃든 특별 메뉴가 별미였다. 소박하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나누는 식사, 이보다 즐거운 일이 어디 있는가. 산은 그렇게 우리들의 마음까지 정겹게 한다.
☆… 이제 서서히 하늘이 열리고 뽀얀 구름 사이로 따가운 햇살이 살아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우후청산근(雨後靑山近)이라고 했던가. 비 개고 하늘이 맑으니 멀리 있는 청산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뜻이니, 그만큼 시야가 청명해진 것이다. 운길산 정상에서 식사를 마친 우리는, 능선을 따라 계속 산행을 진행했다. 그리하여 적갑산-칠문봉 정상을 거쳐 팔당역으로 하산하는 여정이다. 결코 짧지 않는 거리였다. 보슬비로로 시작한 아침나절, 오후가 되면서 서서히 환한 햇살이 산야에 내리는 산길이었다. 그러나 숲속의 산길은 쾌적했다. … 팔당역옆 지인이 운영하는 전통식당에서 마신 시원한 오디차와 버섯전골 기타 전통 궁중요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팔당대교를 거쳐 성남으로 이동 오늘 절친 금장사 내외분과 함께한 산행의 짐을 벗어 놓았다♣ -<끝>
좋은일 많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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